KoKo's Library

2025/02/26

역대상24장 : 대제사장의 나라

#역대상_24장 은 대제사장의 계보와 레위 자파의 계보를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4:3절과 19절은 다윗 왕이 제사장들을 조직하여 그들의 직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계보를 등록하여 기록으로 남겼다는 내용입니다.

3절은 다윗이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과 이다말의 후손인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아 아론의 후손들을 그 맡은 책임에 따라 그룹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작업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며 제사장들의 역할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정해진 순서와 규칙에 따라 성전 봉사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다윗은 이 대제사장들의 계보를 기록하여 후에 제사장 직무에 대한 계승과 관리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다윗은 더 이상 성막이 아닌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새로운 예배의 체계를 마련하고 제사장들을 조직화하는 내용입니다.

1. #대제사장의 계보 (1~19절)

  • 아론의 아들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 나답과 아비후가 자녀 없이 죽음 →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이 제사장 직분을 계승
  • 엘르아살 계열이 더 많아 16반열, 이다말 계열이 8반열로 조직됨

총 24반열로 나누어 제비뽑아 순번을 정함

#24반열 목록:

1. 여호야립 2. 여다야 3. 하림 4. 스오림 5. 말기야
6. 미야민 7. 학고스 8. 아비야 9. 예수아 10. 스가냐
11. 엘리아십 12. 야김 13. 훕바 14. 예세브압 15. 빌가
16. 임멜 17. 헤실 18. 합비세스 19. 브다히야 20. 여헤스겔 21. 야긴 22. 가몰 23. 들라야 24. 마아시야

2. #레위 자파의 계보 (20~31절)

  • 레위의 세 아들: 게르손, 고핫, 므라리
  • 각 자파(가문)에서 성전 봉사를 맡을 사람을 제비뽑아 결정
역대상 24:31은 이 모든 과정들이 다윗과 사독, 아히멜렉과 대제사장 가문의 지도자들과 레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사장들의 직무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역대상은 포로귀환 후 다시 기록된 역사서 입니다.

그렇다면, 이 역대상을 기록한 저자들이 22장-24장, 그리고 앞으로 나올 29장에 이르기까지 긴 장을 할애해 기록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역대상의 전체적 맥락은

  1.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세워진 왕 다윗, 그리고
  2. 다윗에게 주신 성전에 대한 약속
  3. 성전부지 마련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신 하나님, 그리고 
  4. 그 약속의 왕에 의해 새로운 성전 중심의 예배에 공정하게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대제사장의 계보와 직무로 연결됩니다.

역대상의 성전 중심 전개와 제사장들에 대한 기록은 바벨론 포로귀환 후의 이스라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 같습니다.

모세의 성막 중심(이동)의 예배에서 다윗의 성전 건축(정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역대상에서 성전과 제사장들의 계보와 직무에 대한 기록은, 바벨론 포로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 회복과 민족적 재건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했을 것 입니다. 

역대상 24장에서 대제사장의 계보와 레위 자파의 계보를 자세히 기록한 이유는

1. 성전 중심 예배의 질서 확립과 성전에서 봉사할 사람들을 공정하게 제비뽑아 24반열로 배치함으로써 예배의 연속성과 질서를 보장했습니다.

2. 대제사장의 정통성 확인 : 대제사장은 반드시 아론의 후손이어야 했습니다. 엘르아살과 이다말 후손들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기록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립하고, 후대의 논란을 방지했을 것 입니다.

3. 레위인의 역할 강화 : 성전 봉사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레위인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들의 계보를 정리하여 성전에서 수행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배정했습니다.

4. 후대를 위한 기록 보존 : 다윗 시대에 정리된 이 조직이 이후 성전 시대(솔로몬 이후)에도 유지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성전 봉사를 회복할 때 이 계보가 기준이 되어 전통을 이어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단순한 족보 정리가 아니라 성전 예배의 체계적 운영, 제사장 계승의 정통성, 레위인의 역할 분배 라는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대상은 이 성전에 대한 기록을 다윗 왕과 한 후손, 그리고 영원할 그의 왕권에 대한 약속으로 시작하지만, 포로귀환 후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그들은 다윗의 후손을 왕으로 세운 적은 없었습니다.

#역대상 24장의 제사장 계보 기록과 포로귀환 후 성전 봉사 체계의 복원

1. 포로기 이후 성전 봉사 체계 복원

  •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후,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을 재건해야 했습니다(에스라 1~6장).
  • 하지만 오랜 포로 생활로 인해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조직이 무너졌고, 누가 성전에서 봉사할 자격이 있는지 불분명해졌습니다.
  • 다윗이 정리한 제사장·레위 계보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 귀환한 레위인들이 성전 봉사를 다시 조직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2. 포로 귀환자 중 일부가 자신의 계보를 입증하지 못함

  • 에스라 2:61-62에서 몇몇 제사장 가문이 족보를 찾지 못해 제사장 직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따라서 계보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제사장·레위인으로서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3. 제사장·레위인의 역할 재확립

  •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성전과 예배가 다시 회복될 때, 다윗시대에 기록된 제사장과 레위인 조직이 모범이 되어 적용되었을 것 입니다.
  • 느헤미야 12장에서도 포로 귀환 이후 활동한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명단이 기록되는데, 이는 역대상 24장의 조직과 연결됩니다.
#포로 귀환 당시 대제사장 계보
1. 첫 번째 귀환(스룹바벨과 함께, BC 537년)
  • 대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스가랴 3:1, 에스라 3:2)
  • 바벨론 포로기 동안 대제사장직이 공석이었으나, 귀환 후 여호수아가 성전 재건과 제사 회복을 주도함.
2. 두 번째 귀환(에스라와 함께, BC 458년)
  • 대제사장 엘리아십(느헤미야 3:1, 12:10)
  • 성전 봉사를 조직하고, 성벽 재건 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함.
3. 세 번째 귀환(느헤미야와 함께, BC 445년)
  • 대제사장 요야다, 요나단(느헤미야 12:10-11)
  •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성전 정화를 담당.
#포로 귀환 당시 레위 지파 계보
1. 첫 번째 귀환(스룹바벨과 함께)

  • 레위인 중 일부만 돌아옴(에스라 2:40-42)
  • 제사장보다 숫자가 적었고, 성전 봉사자 부족 문제 발생.

2. 두 번째 귀환(에스라와 함께)
  • 에스라가 레위인 부족을 문제 삼고, 가삅야라는 지역에서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을 모집(에스라 8:15-20).
  • 이때 사밧과 여사뱌 등의 레위 지도자들이 합류함.
3. 세 번째 귀환(느헤미야와 함께)
  • 성벽 봉헌식 때 레위인들이 크게 동원됨(느헤미야 12:27).
  • 레위 지파에서 찬양대와 문지기 역할을 담당할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배치함.
#귀환 후 레위인의 역할
  •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 문지기, 제사 도구 관리, 백성의 율법 교육 등의 역할을 맡음.
  • 하지만 포로 귀환 당시 레위인 숫자가 적어 예배 체계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에스라 2:36-42).
포로 귀환 당시 제사장 계보는 여호수아 → 엘리아십 → 요야다 → 요나단으로 이어졌으며, 레위인들은 귀환 초기에 숫자가 적었으나 점차 조직을 재정비했습니다.
이러한 재정비의 기준이 된 것이 다윗이 정리한 역대상 24장의 계보였습니다.

#포로 귀환 당시 다윗의 계보

포로 귀환 시대(BC 537년~445년경)에는 다윗 왕조의 직계가 정치적 지도자로 활동했으나 왕으로 즉위하지는 못했습니다.

1. 첫 번째 귀환 지도자 – 스룹바벨

스룹바벨(BC 537년경)
  • 다윗 왕조의 후손으로, 여고냐(여호야긴)의 손자, 스알디엘의 아들(마태복음 1:12, 역대상 3:17-19).
  •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을 이끌고 성전 재건을 시작함(에스라 3:8, 학개 1:1).
  • 그러나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왕이 아닌 총독(페르시아 총독)으로 활동.
2. 스룹바벨 이후 다윗 왕조 계보
  • 스룹바벨의 아들들: 므술람, 하나냐 등(역대상 3:19-24).
  • 스룹바벨 이후 다윗 왕조의 후손들은 유다 총독직에서 멀어졌고, 성경에서도 직접적인 통치자로 등장하지 않음.
3. 다윗 왕조 계보가 예수님과 연결됨
  •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따르면, 스룹바벨의 후손들이 계속 이어져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연결됨.
  • 스룹바벨 이후 다윗 왕조의 후손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으나, 메시아 계보는 보존되었음.
포로 귀환 당시 다윗의 직계 후손은 스룹바벨이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그는 유다의 왕이 아니라 총독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다윗 왕조의 후손들은 점점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지만, 메시아의 계보는 신약까지 이어졌습니다.

#포로 귀환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유다에는 다윗 왕조 출신의 왕이 없었습니다.

1. 페르시아 통치기 (BC 537~BC 333)
  • 바벨론이 멸망한 후,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이 되었음.
  • 유다에는 왕이 없었고, 페르시아가 임명한 총독(예: 스룹바벨, 느헤미야 등)이 다스림.
  • 제사장들이 종교적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가짐(예: 대제사장 여호수아, 엘리아십).
2. 헬라 통치기 (BC 333~BC 167)
  •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유다는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음.
  • 알렉산더 사후, 그의 장군들(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루코스 왕조)이 유다를 차지함.
  • 헬라화 정책이 강요되었고, 성전이 모독당하는 등 유대인의 신앙이 위협받음.
3. 하스몬 왕조 (BC 167~BC 63) – 제사장이 왕 역할을 한 시기
  • 마카비 혁명(BC 167~BC 160)으로 유대인들이 독립을 쟁취.
  • 하스몬 왕조(BC 140~BC 63)가 세워졌으며,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하는 체제가 등장.
  • 하지만 하스몬 왕조는 다윗 왕조 출신이 아니었고, 레위 지파의 후손이었음.
4. 로마 통치기 (BC 63~AD 70)헤롯 왕조 등장
  • BC 63년, 로마가 유다를 점령하고 하스몬 왕조가 몰락.
  • 헤롯 대왕(BC 37~BC 4)이 로마의 허락을 받아 유대 왕이 됨.
  • 하지만 헤롯은 에돔(이두메) 출신으로 다윗 왕조와 무관함.
  • 헤롯 이후, 그의 후손들이 유대를 분할 통치했으나 로마 총독이 실권을 장악.
5. 예수님 시대 (AD 1세기)
  • 유대에는 로마 총독(예: 본디오 빌라도)이 다스렸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독립을 원함.
  • 다윗 왕조 출신의 왕은 없었고, 유대인들은 메시아(다윗의 후손)가 와서 왕이 되기를 기대함.
  •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인정했으나, 로마 당국과 유대 지도자들은 이를 반대함.
포로 귀환 이후 유다에는 다윗 왕조 출신의 왕이 없었으며, 총독과 제사장이 정치·종교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더욱 메시아(다윗의 후손)가 와서 왕이 되기를 기대했고,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을 때 많은 이들이 그를 다윗의 후손으로 환영했던 것입니다.

#포로 귀환 후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영적·정치적 지도자들

1. 페르시아 통치기 (BC 537~BC 333) – 총독과 대제사장 중심
  •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으로, 왕이 아닌 총독과 대제사장이 지도자 역할을 수행함.
  • 정치적 지도자: 페르시아가 임명한 유다 총독(예: 스룹바벨, 느헤미야).
  • 영적 지도자: 대제사장(예: 여호수아, 엘리아십, 요야다 등).
율법 중심의 신앙 회복:
  • 에스라: 율법 학자로, 유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개혁을 주도(에스라 7:10).
  • 느헤미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종교 개혁을 추진(느헤미야 8~13장).
2. 헬라 통치기 (BC 333~BC 167) – 대제사장과 장로들
  •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레니즘(그리스 문화)이 강요됨.
  • 유다에는 왕이 없었고, 대제사장이 사실상의 최고 지도자 역할을 수행.
  • 헬라 제국이 유다를 다스리는 동안 대제사장직이 정치적으로 변질됨.
  • 셀루코스 왕조(시리아)의 통치하에 부패한 제사장(예: 야손, 메넬라우스)이 등장.
  • 성전이 이방 신에게 더럽혀지는 일이 발생(BC 167년, 안티오쿠스 4세가 성전을 모독).
3. 하스몬 왕조 (BC 167~BC 63) – 대제사장이 왕이 된 시기
  • 마카비 혁명(BC 167~BC 160)으로 유대인들이 독립하고 하스몬 왕조가 세워짐.
  • 하스몬 왕조에서는 왕이면서 대제사장도 겸직하는 체제가 형성됨.
대표적인 인물:
  • 요나단(BC 160~BC 142): 대제사장이자 유다의 실질적 통치자.
  • 시몬(BC 142~BC 134): 대제사장, 유다의 군사적 지도자, 독립 선언.
  • 요한 힐카누스(BC 134~BC 104): 하스몬 왕조의 강력한 왕.
4. 로마 통치기 (BC 63~예수님 시대) – 헤롯 왕조와 대제사장 체제
  • 로마가 유다를 점령(BC 63) → 하스몬 왕조 몰락.
  • 유다에는 왕이 없었고, 로마가 임명한 헤롯 왕조와 대제사장이 정치적·종교적 지도자로 활동.
헤롯 왕조의 등장:
  • 헤롯 대왕(BC 37~BC 4): 로마가 유다의 왕으로 임명. 성전 개축(헤롯 성전)을 진행.
  • 하지만 헤롯은 다윗 왕조 출신이 아니며, 이두메(에돔) 출신이었음.
대제사장들이 종교 지도자로 활동: 
  • 로마가 대제사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함(예: 안나스, 가야바).
5. 예수님 시대 (AD 1세기) – 유대 종교 지도자들
  • 예수님 시대에는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산헤드린 공회)이 유대 사회를 주도함.
주요 집단:
  1. 대제사장 – 성전 중심의 제사를 주관(예: 안나스, 가야바).
  2. 산헤드린 공회 – 유대 사회의 최고 종교·정치 기관(70명으로 구성).
  3. 바리새인 – 율법을 강조하고, 장로들의 전통을 중시.
  4. 사두개인 – 성전 권력을 장악한 귀족층, 로마와 협력적.
  5. 서기관들 – 율법 해석과 교육 담당.
 정리하면, 
포로 귀환 후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유대 사회를 이끈 핵심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페르시아 통치기: 유다 총독(스룹바벨, 느헤미야)과 대제사장(여호수아, 엘리아십).
2. 헬라 통치기: 대제사장이 정치·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수행.
3. 하스몬 왕조: 대제사장이 왕을 겸하며 유다를 다스림.
4. 로마 통치기: 로마가 세운 헤롯 왕조와 대제사장이 유다를 이끌었으며, 산헤드린 공회가 종교적 권력을 행사.

이처럼 다윗 왕조 출신의 왕은 없었고,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이 유대 사회를 주도하며 영적·정치적 중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기원과 유래 

 #역대상 23~24장의 제사장 계보와 포로 귀환 이후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지는 대제사장들

1. 역대상 24장의 제사장 계보 개요

  • 역대상 24장은 아론의 후손인 엘르아살과 이다말 두 계열을 중심으로 24반열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 다윗이 제사장 직분을 조직적으로 정리하여 성전 예배를 체계화함.
  • 이 24반열은 포로 귀환 후에도 유지되었고, 예수님 시대까지 영향을 미침.

2. 포로 귀환 이후 대제사장 계보와 연결된 이름들

①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예수아, 히브리어: יְהוֹשֻׁעַ, 스가랴 3:1, 에스라 3:2)  
  • 대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로,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다로 귀환한 첫 번째 대제사장.
  • 성전 재건을 주도하며,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지지를 받음.
  • 역대상 24장에서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 계열에 속함

② 느헤미야 시대의 대제사장

엘리아십(느헤미야 3:1, 12:10)

  • 역대상 24장에 나오는 제사장 계보 중 엘르아살 계열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음.
  •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도왔으나, 이방인 도비야와 결탁하여 논란이 됨(느헤미야 13:4-7).

요야다(느헤미야 12:10-11)

  • 엘리아십의 아들, 대제사장직을 계승.
  • 바벨론 귀환 이후 제사장 반열의 역할을 강화함.

3. 헬라 통치기(BC 333BC 63)의 대제사장

대제사장직이 점차 정치적 권력과 결부되며 헬라 제국의 개입을 받음.

  • 오니아 1세(BC 323~BC 300) : 제사장 반열에서 계속 이어진 엘르아살 계열.
  • 오니아 3세(BC 185~BC 175) : 성전 정결을 지키려 했으나, 그의 동생 야손(BC 175~BC 172)이 헬라 제국과 결탁하여 대제사장직을 차지.
  • 야손과 메넬라우스(BC 175~BC 162) : 메넬라우스는 헬라 왕 안티오쿠스 4세와 결탁하여 성전을 더럽힘.
  • 유대인들의 반발로 마카비 혁명이 발생.

4. 로마 통치기(BC 63~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과 24반열의 영향

  •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후, 대제사장은 로마 총독의 허락을 받아 임명되는 정치적 직책이 됨.
  • 그러나 성전에서의 제사장 반열(24반열)은 여전히 유지됨.
  • 예수님 시대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가문들도 역대상 24장의 계보에서 유래됨.

①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

  • 안나스(AD 6~15, 요한복음 18:13) :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실권을 행사. 사위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임명.
  • 가야바(AD 18~36, 마태복음 26:3, 요한복음 18:24)
  • 예수님을 신문한 대제사장 : 역대상 24장에서 내려오는 제사장 가문의 일원으로 추정됨.

② 사가랴와 24반열

  • 사가랴(누가복음 1:5) –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누가복음 1:5).
  • 아비야 반열은 역대상 24:10에 기록된 8번째 반열로, 다윗 시대의 제사장 조직과 직접 연결됨.

이는 예수님 시대에도 24반열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줌.

결론

1. 포로 귀환 이후 대제사장들은 역대상 24장에 기록된 계보를 따른다.

  • 여호수아(스룹바벨과 함께 귀환) → 엘리아십 → 요야다 → 오니아 가문 → 안나스 → 가야바 등.

2. 예수님 시대에도 다윗이 정한 24반열이 유지되었다. :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사가랴가 아비야 반열(역대상 24:10)에 속한 제사장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

따라서, 역대상 24장에 기록된 제사장 계보는 포로 귀환 후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실제로 이어졌으며, 대제사장직과 24반열 제도가 계속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세우지 않은 이유(다윗 왕조 출신 왕의 계승의 단절)

스룹바벨 이후 다윗 왕조의 후손들은 점점 역사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등장으로 다윗의 혈통은 남아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활동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지만 목수로 살아감, 마태복음 1장).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 출신의 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1. 정치적 이유: 페르시아와 이후 제국들의 통치

  •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BC 537~BC 333)의 속국이었음.
  • 바벨론이 멸망한 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포로 귀환을 허락했지만, 유다는 독립 국가가 아니라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유다 총독령)이었음.
  • 따라서 유다 백성은 왕을 세울 권한이 없었고, 대신 페르시아가 임명한 총독(예: 스룹바벨, 느헤미야)이 통치함.
  • 스룹바벨은 다윗의 후손이었지만 왕이 되지 못하고 총독(행정 관리)으로 활동.
  • 이후 헬라 제국(BC 333예수님 시대)의 지배로 이어짐.
  • 유다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이후 로마가 지배함.
포로귀환 이후, 그들의 정치적 독립의 어려움은 그들이 왕을 세우는데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2. 신앙의 회복에 집중

  • 포로 귀환 이후, 유다 백성은 왕국 회복보다 신앙 회복에 집중함.
  •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우상 숭배 등)의 대가를 경험함.
  • 이를 반성하며, 유다 지도자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한 신정체제(神政體制)]를 강조함.
  •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율법 중심의 신앙 개혁을 추진했고, 대제사장이 영적 지도자 역할을 수행함.

 대제사장 중심 체제로 변화 ; 왕 대신 대제사장이 정치적·종교적 지도자로 자리 잡음.

  • 다윗 왕조 출신의 왕이 없었기 때문에, 포로 귀환 이후 유대 사회는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신정 체제로 운영됨.
  •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부터 대제사장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후 산헤드린(유대 공회)이 유대 사회를 다스리는 구조가 형성됨.
  • 마카비 혁명(BC 167BC 663으로 대제사장이 왕이 되는 하스몬 왕조가 다스림(이는 다윗 왕조가 아닌 대제사장 계열이 왕이 된 특이한 사례였음.)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 대망 사상

바벨론 포로기-포로귀환과 식민지배-대제사장이 왕권을 겸한 하스몬왕조와 바리새인들의 반발, 그리고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에돔 출신의 헤롯왕이 다스리는 복잡한 정치적, 영적, 역사적 환경 속에서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 사상은 더욱 강화되었을 것 입니다.

특히 로마 지배 시기에 더욱 구체화되어, 이 시기 유대인들은 군사적·정치적 해방을 가져올 메시아를 더욱 강하게 기대함.

→하스몬 왕조는 마카비 혁명 이후 탄생한 왕조로, 왕과 대제사장의 역할을 겸한 제사장 계열(사두개파 중심)의 통치가 이루어짐.→ 바리새인들은 하스몬 왕조의 헬레니즘적 요소와 대제사장이 왕권을 겸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단순한 정치적 반발이 아니라 율법 중심의 신앙적 순수성을 강조하며 저항한 것이 더 본질적인 이유였음.

하스몬 왕조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사두개파는 정치적·종교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성전 운영과 대제사장직을 독점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앙적 전성기이자 정치적 안정기였던 다윗의 시대가 그립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왕, 다윗.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지도자, 다윗. 그리고 그의 왕권을 축복하신 하나님과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삼하 7:12-16, 대상 17:11-14)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국의 실현을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대했을 것 입니다. (역대상 17:14, 사무엘하 7:12-16, 이사야 9:6-7).

  • 역대상 17:14 (개역개정)

14. 내가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영원히 세울 것이요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사무엘하 7:12-16 (개역개정)

12. 네 날이 차서 네가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이사야 9:6-7 (개역개정)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위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메시아 대망사상은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져,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온 왕으로 기대한 이유가 됩니다.(마태복음 21:9).

마태복음 21:9 (개역개정)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비록 그들이 기대한 다윗의 후손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다윗의 후손의 모습은 달랐을지라도 ...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메시아를 기대하는 중요한 신학적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예수님이 오셔서 성취하신 영적인 메시아상(하나님의 나라)이 아니라, 정치적 해방을 가져올 왕으로서의 메시아상이 강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다윗의 후손 메시아(그리스도)"은 정치적 해방과 왕국의 회복을 이루는 왕이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다윗의 후손은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