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프랑스 자수를 가르쳤다. 수업을 시작한지 두어 달 뒤에 이사를 가버려 아쉽게도 기초만 배우고 브로치 하나 만들고 수업은 끝이 났다. 중학교 가정 시간엔 이 짓을 뭐하나 싶었던 게 나이가 들어서인지 함께 수다 떨며 놓다보니 시간도 잘 갔고, 자수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다 보니 함께 수다 떠는 재미도 꽤 있었다. 사실 요즘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취미생활 하나쯤은 할 만한 게 많다. 그러나 뭘 하나 배우려면 수강료보다 만만찮은 재료비로 부담이 되곤 했었다. 주저하다 조심스레 집에 남아도는 천 조각들이 있는데 그걸 이용해도 되냐 물으니 그걸 사용해도 된다고 하여 용기를 내어 그 자수 팀에 합류했었다. 그녀가 떠나고 자수 책을 하나 구입하려고 집 근처의 도서관엘 먼저 둘렀다. 무슨 책을 사야할지 몰라서. 프랑스 자수가 유행이었는지 책들이 종류가 다양했다. 책들을 둘러보고 인터넷의 온라인 검색으로 재료과 가격들을 둘러 봤다. 볼수록 알수록 더욱 암담하게 여겨졌다. 이 변변찮은 실력에 이걸 다 사야하나? 온통 돈벌이에 집중된 모양새다. 무슨 색을 어떻게 넣을지 아직 구상도 안 되어있는 초보에게 자수의 세계는 너무도 화려했다. 더구나 자수 책에 나온 자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색을 다 갖추려니 실 값만 무려 10만원이 넘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실 값은 초기 비용일 뿐 1년은 족히 넘게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의 비용들은 작품을 만드는데 드는 부자재 값이 더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난 그냥 뱁새인 내 형편에 자족하며 책 몇 권을 사 나름의 자수 라이프를 시작했다. 책 구입 비용을 제외한 내 자수 라이프의 초기 비용은 3만원 전후다. 이후 자주 쓰이는 색상의 실을 몇 개 더 구입하고 몇 가지의 부자재들을 조금 더 구입했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자수의 기초들은 쉽게 배울 수 있다. 몇 가지 재료들을 갖춰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서랍장 속에 묵혀 두었다 언제든 필요할 때 아기의 턱받이, 손가방, 쿠션 등 생활 속 소품들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자수의 활용 범위가 너무 넓어 다 다루진 못한다. 다만 여기선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자수에 필요한 도구들과 저렴하게 활용하는 법들을 소개한다.
자수에 필요한 도구들
- 자수실 : 면사, 견사, 레이온사, 울사, 메탈사 등이 자수에 이용된다. 주로 DMC25번사를 많이 사용한다. DMC는 상표이름이고 25번사는 실의 굵기다. 이 실은 보통 우리가 아는 바느질 실보다 조금 더 굵다고 생각하면 된다. 앵커라는 브랜드도 있다. 자수실은 보통 1타래가 8m 정도이고 가격은 600원 선이다. 물론 1개의 색상 가격이다. 간단한 꽃 하나를 수놓아도 3개의 색상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다있다는 그 집에 가면 중국산 실을 싸게 판다. 그런데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그것도 색상이 다양하지 못해 결국은 다있는 그 집의 실 만으로는 만족감이 들지 않는다. 난 국산 실로 시작했다. 48색의 4m씩 감겨있는 세트 자수실이다. 난 아직도 이 실로 잘 쓰고 있다. 원래 가격은 5만원 선이었던 것 같은데, 할인 행사 시기에 쓱에서 포인트 사용하고 2만5천원에 구입했다. 베개 만들고 요 만들고 제법 많은 걸 만들었는데도 실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많이 쓰는 몇 가지 색상들만 추가로 구매했다. 질도 괜찮고, 색감도 좋고 물도 빠지지 않았고, 빨아도 아직 문제없이 튼튼하다. DMC실은 이보다 광택이 더 있지만 좀 더 부드러워서인지 좀 더 잘 끊어진다. 굳이 DMC를 구입해야 되는 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색감을 선 보인다는 점에선 메리트가 있다. 그러나 그건 실력이 어느 정도 출중해 진 다음에 사용해도 늦진 않을 것 같다. 중국제품은 50색상에 만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 이도 여의치가 않으면 집에 있는 일반 바느질 용 실로도 연습할 수 있다. 색상만 있으면, 이 또한 수를 놓아도 이쁘다. 자수실 만큼 고급스럽진 않다. 그래도 질기고 쓸 만은 하다. 불편한 점은 너무 얇아 몇 가닥 겹쳐서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자수실 보다 더 자주 엉키므로 엉키지 않게 신경을 더 써야 하는 단점도 있다. 그래도 자수의 기법을 연습하는 용도라면 난 이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뜨개실도 울사랍시고 쓰지는 마라. 끊어진다. 계속 끊어진다. 천을 뚫을 생각이 그 아이에겐 전혀 없다. 울사는 자수용 울사 외엔 거의 답이 없다고 보는 게 사실 상 맞다. 물론 뜨개 옷에 자수를 놓는 경우는 예외다.
- 수틀 ; 요즘은 실리콘 수틀을 많이 쓴다. 나무 수틀보다 사용하기가 더 편리하고 더 고정이 잘 되는 감도 있고, 무엇보다 미끄러지지 않아 편리하다. 비싼 나무 수틀 샀다가 그대로 서랍 속에 묻혀 있다. 2500원 짜리 손바닥 정도의 크기면 충분하다.
- 바늘 ; 대개 일본의 크로바 제품을 주로 쓴다. 나도 한 셋트 가지고 있다. 근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난 예전에 다있다는 그 집에서 다양한 사이즈로 나온 몇 백 원짜리 집에 있던 바늘로 지금도 수를 놓는다. 들고 다니는 휴대용 반짓고리에 든 바늘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바늘구멍의 모양새다. 바늘 귀가 둥글게 생긴 건 사용해선 안된다. 바늘과 바늘 귀의 굵기가 비슷한 것이 좋다. 또한 바늘의 굵기는 실의 굵기와 비슷한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 설마 더 아끼느라 집의 녹슨 바늘 쓸 생각은 마시라!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궁상이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의 조금은 가는 바늘이 적당하다. 너무 가늘면 휘기도 쉽지만 손가락 장난 아니게 아프다. 적당히 가늘지만 쉽게 휘지 않는 바늘이 좋다. 좀 길고 단단한 바늘도 필요하다. 실을 감아야 하는 블리온 스티치와 같은 기법에는 조금 긴 바늘이 쓰임새가 좋다. 그래서 요는, 다있다는 그 집이나 천냥 상점가서 500원 주고 세트 구입하시길 권한다. 나는 예전에 300원 주고 샀던 것 같다.
- 가위 : 수예용 가위를 많이 쓴다. 요즘은 문구점에서 나오는 2500원짜리 가위도 정말 좋다. 난 재단 가위도 있고 쪽가위도 있지만, 아들 초등학교 때 문구점에서 산 2000원짜리 가위로 원단도 자르고 도안도 자른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난 이 가위만 쓴다. 손바닥 정도의 길이다. 쪽가위는 섬세하게 잘라야 할 부분이 있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있으면 편리하다. 없다고 심하게 불편하진 않다. 이건 그야말로 It is up to you.다!
- 천 : 린넨을 많이 쓴다. 근데 조금 비싸다. 처음에는 광목 천에 제일 실용적이다. 하얀 색 면을 사용해도 좋다. 옥스퍼드지는 십자수에 더 알맞다. 프랑스 자수나 일반 자수에는 그냥 광목이나 워싱되었거나 표백된 광목이 제일 만만하다. 한 마는 보통 90cm이고, 한 마에 보통 800원~1200원 선이다. 싸게 산 답시고 인터넷 뒤지지 마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에 살지 않는 한 광목은 지역 시장의 직물 가게가 제일 싸게 먹힌다. 바깥에선 안 파는 것 같아도 들어가면 다 판다. 요즘은 광목도 두꺼운 건 비싸다. 두껍다고 튼튼할 거라 생각해 비싼 광목 굳이 사지 마시라. 두꺼운 광목.. 맞다! 튼튼하다. 그리고 수놓기 정말 힘들다. 손가락 구멍날 수도 있다. 그냥 옷 재단에 쓰는 마당 1000원하는 광목 일단 사 보고 나중에 실력이 좀 늘면 조금 더 질이 좋은 것으로 사용해도 된다. 일단 1마만 사세요. 왜냐면 자수 놓는데 천의 양이 그닥 많이 필요 없어용.
- 셀로판 종이 : 따로 구입할 필요 없다. 그냥 와이셔츠용 포장 비닐 잘라서 사용하면 된다. 도안 옮길 때 필요하다. 천 위에 먹지- 먹지 위에 도안- 도안 위에 비닐 순으로 놓고 안나오는 다 쓴 모나미 볼펜으로 그리면 잘 전사된다.
- 먹지 : 다양한 색상이 나온다. 자수용이나 의류용으로 나오는 먹지는 조금 비싸다. 그냥 문구점 가서 모두가 아는 그 까만 먹지 사용해도 별 무리 없다. 수를 놓다 보면 그 안에 다 감춰진다.
- 수성 마킹펜과 전사용 열펜 : 이런 게 있다. 아주 편리하다. 생긴 건 사인펜처럼 생겼는데, 빨면 물에 지워진다. 다리미 질을 하면 지워지는 것도 있다. 전자는 수성 마킹펜이고 후자가 열펜이다. 나도 자수를 배우며 눈치가 보여 3000원 주고 하나 구입했었다. 근데 한 번 쓰고 안 나왔다. 먹통! 먹통! 먹먹통! 난 그냥 연필이나 샤프펜 쓴다. 진하게만 안하면 물에도 잘 씻기고 손에도 익숙해 그냥 연필 쓴다. 무리 없다. 쵸크 펜이란 게 있다. 원래는 의류 재단용으로 나온 것인데, 자수 도안 그릴 때도 많이 쓴다. 근데 정말 이건 사지 마라. 나는 20년 째 들고만 있다. 매번 깍아 쓰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쉽게 닳고 끝이 뭉퉁해져 선 이쁘게 안나온다. 가격은 수성펜이랑 별 차이 없다. 수성펜은 가까운 자수점이나 십자수 자수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반드시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구입할 것을 권한다.
- 이 외에 심지나 브로치, 비즈 등의 부자재 들이 필요할 수 있다. 심지는 많이 사용된다. 퀼트용 심지를 한 마 정도 구입해 두면 한 동안 쓸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나 부모님의 소품을 만들 때는 목화솜을 사용한다. 중국산은 마 당 5000원 전후이고, 국산은 만 원 선이다. 간단한 생활 소품은 그냥 2000~3000원 사이의 심지를 사용하면 된다. 비즈는 포인트 줄 때 몇 개 씩 사용된다. 비즈는 눈에 보이는 색상과 실제 달았을 때의 비주얼이 다른 경우가 많아 경험이 좀 필요하다. 그러니 무턱대고 사지 마시라. 인조 진주 한 줄에 1500원짜리 사서 포인트 줘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1 줄 사도 다 못 쓰는 경우가 태반이다.
- 브로치는 자수 초보자들이 많이 구입하는 부자재 중의 하나다.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작은 게 앙증맞게 이쁘기까지 하다. 금손이 아니어도 나름 물건 스럽다. 근데 중요한 건, 판매되는 자수용 브로치가 너무 무겁다는 사실이다.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니게 구석 어딘가에 박히기 십상이다. 브로치를 만들려면 문구점에 파는 가벼운 초딩 공예용 브로치가 더 나을 수 있다. 접착제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접착제가 필요하다. 일제 크로바 자수용 접착제를 많이 쓴다. 비.싸.다. 초등학교 앞이나 동네 문구점에 가면 내용물이 하얗게 생긴 공예용 풀이 있다. 똑같은 풀이다. 그냥 그것 사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