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홀라(אָהֳלָה, Oholah)”와 “오홀리바(אָהֳלִיבָה, Oholibah)”는 에스겔서 23장에 등장하는 이름들로, 하나님께서 비유적으로 사마리아(북이스라엘)와 예루살렘(남유다)을 지칭하실 때 쓰신 상징적인 인물 이름입니다.
1. 히브리어 원어
- 오홀라 (אָהֳלָה, ’Oholah)
구성: ’ohel (אָהֶל, “장막, 천막”) + 접미사 -ah (“그녀의”)
직역: “그녀의 장막” 혹은 “자기 장막”
- 오홀리바 (אָהֳלִיבָה, ’Oholibah)
구성: ’ohel (장막) + i (“나의”) + bah (“그 안에”)
직역: “나의 장막이 그 안에 있다”
즉, “내 장막(=하나님의 장막)이 그 가운데 있다”는 의미.
2. 상징적 의미
에스겔서 23장에서는 두 자매의 비유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설명합니다.
- 오홀라 = 사마리아 (북이스라엘)
“자기 장막” → 하나님의 성막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예배한 것을 상징.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 대신 벧엘과 단에 자기들만의 제단과 송아지 우상을 세워 섬겼음.
정리하면,
“자기 장막” → 하나님이 정하신 성전이 아닌, 자기들이 만든 제단에서 예배. → 하나님을 떠난 자기 방식 신앙
- 오홀리바 = 예루살렘 (남유다)
“내 장막이 그 안에 있다” →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로 예루살렘에 있었음.
그러나 남유다 역시 성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과 애굽의 신들을 섬기며 우상숭배에 빠졌음.
→ 성전이 실제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김. → 겉으로는 하나님 예배, 실제로는 혼합된 신앙
요약하면
- 오홀라 (Samaria) = 자기 장막 → 인간이 만든 예배, 우상숭배
- 오홀리바 (Jerusalem) = 내 장막이 그 안에 있다 → 하나님 성전이 있었음에도 불순종
하나님은 두 이름을 통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음란한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드러내심.
3. 오늘의 오홀라와 오홀리바
오늘의 오홀라적 모습 (자기 장막 신앙)이란
교회 공동체와 상관없이 자기 방식, 자기 해석으로만 믿음 생활을 하는 경우,
즉, 말씀과 진리보다 개인 취향이나 경험 중심으로 신앙을 세우는 모습으로,
오늘의 오홀리바적 모습 (성전 안의 배신)이란
교회에 속해 있고 예배에 참석하지만,
실제로는 세상 가치나 우상(물질, 권력, 성공)과 타협하며 겉모습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은 “교회에 다니냐, 혼자 믿느냐”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둘 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세상은 이들을 생계를 위한 창녀라기보다 자신들의 욕정을 따라 창녀가 된 자들로 취급하며 조롱했다고 합니다.
에스겔서에서 두 자매는 단순히 “생계형 창녀”가 아닙니다.
스스로 욕정을 따라 이방 민족에게 몸을 내어주고, 그들과 결탁한 자들로 그려집니다(겔 23:5–8, 12–21).
그래서 세상도 그들을 “궁핍해서 어쩔 수 없는 자”가 아니라, 쾌락과 욕망에 탐닉하여 스스로 타락한 자로 취급하며 조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가운데 이중으로 수치를 당하는 그림입니다.
4. 이스라엘의 롤모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롤모델은 누구였을까요?
다윗? 솔로몬?
성경에서 다윗은 언약적 충성의 표본입니다.
범죄는 있었으나 회개로 돌아섰고, 우상숭배로 민족을 이끌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성전을 가졌음에도,
말년에 수많은 이방 아내의 신들을 위해 산당을 짓고, 신앙을 더럽힙니다(왕상 11:1–8).
또한 무역·조공·세금으로 막대한 부와 군사력을 쌓으며 국제정치적 욕망에 몰입했습니다.
혹여 이스라엘의 롤모델은 하나님은 쏙 빼버린 솔로몬의 지혜, 곧 중개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은 아니었을까요?
에스겔23장의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분명 젊고 건강한 남자에 온 생각과 마음이 꽂혀 한 곳에 환장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 “젊고 건강한 남자들”(군사력, 권력)
- “값비싼 옷과 장식품”(부와 사치)
어쩌면 이들은 "막강한 군사력"과 “이방과의 교역과 동맹”(경제적 번영)에 마음이 사로잡혀 환장하듯 달려드는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즉, 돈과 권력과 쾌락이라면 신앙 양심도, 언약의 정절도 팔아넘긴...
5. 하나님 없는 솔로몬
성전은 있으나 우상과 결탁, 지혜는 있으나 욕망을 좇은 정치와 무역, 부와 쾌락을 위해 신앙을 파는 행위.
에스겔 23장의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바로 그 타락을 극적으로 드러낸 비유처럼 보입니다.
“이 두 자매는 세상 욕망을 따라간 솔로몬의 뒤틀린 유산만을 민족적으로 이어받아,
오직 부강한 나라에만 집중했던, 돈이라면 신앙양심도 자기자신을 파는 것도 서슴치않았던, 중개무역으로 떼돈 벌 생각에 빠져 간음과 살인도 서슴치 않았던, 솔로몬때의 부귀를 쫓았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에스겔 23장에서 묘사된 두 자매가 열광한 젊고 건강한 남자들은 단순히 개인적 쾌락의 은유가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과 그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향한 열망을 비유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요?
“그들의 몸은 나귀 같고, 정수는 말 같도다”(겔 23:20)
→ 짐승적이고 강력한 힘, 정욕적 충동의 은유
“젊고 잘생긴 군인들, 기름진 옷을 입은 총독과 지휘관들”(겔 23:6, 12, 23)
→ 바벨론, 앗수르, 애굽의 젊은 전사들 = 당시 세계 최강 제국의 군사력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런 나라들과 군사 동맹을 맺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마치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묘사됩니다.
1) 군사력에 대한 매혹
-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강대국의 군사력에 매달림
- 젊고 건강한 군인 = 세속적 안전 보장
2) 경제적 욕망과 결합
- 군사적 동맹은 단순히 전쟁 방어가 아니라, 무역·교역을 통한 부의 축적과 연결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한 것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왕이요 방패다”
라고 말씀하셨는데(신 20:4, 시 33:16–17),
그들은 이방 군대와 무역에 마음을 팔아, 마치 군사력과 경제력이 구원자인 것처럼 믿었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오홀라(북이스라엘)와 오홀리바(남유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앗수르·바벨론·애굽 같은 제국의 힘과 부에 꽂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에스겔 23장은 단순한 성적 비유가 아니라,
군사력·부·권력을 향한 이스라엘의 탐욕과 배신을 폭로한 장으로 보입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정욕”은 단순한 성적문란이라기 보다
이스라엘의 권력과 군사력, 그리고 부를 향한 집착이,
남편되신 하나님을 버린 그 타락한 모습이,
세상이 낡아빠진 창녀 취급하며 비웃을 정도로 처참하고 참담했던 상태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요?
세상의 조롱거리,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세상의 권력·군사력·부에 눈 먼 영적 음행의 모습의 적나라함을 설명해주는 건 아닐까요?
많은 이들이 다윗보다 솔로몬이 되고 싶어 합니다.
어느 새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치성이 되었고,
친절은 이용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무서운 친절, 무서운 새벽기도, 더 무서운 천일번제, 더 무서운 금식 ...
예배에 참석하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조롱거리로 사는 것은 어쩌면 세상보다 더 무서운 탐욕 때문은 아닐까요?
이윤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버리고 양심도 팔고 다른 이를 짓밟고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는 장사치, 고객의 문화도 우상도 다 수용하는 거래의 기술, 어쩌면 그것이 이스라엘이 세상의 창녀로 전락한 이유는 아니었을까요?
교회에 참석해 예배를 드리는 자나 자기 방식대로 예배를 드리는 자, 즉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나 교회 밖에 있는 자들 둘 다 모두, 아니, 매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부패함이 더 심각했다고 오늘의 소위 신자들에게 말씀해주시는 건 아닐까요?
- 겔 23:11
“그 여동생 오홀리바가 그보다 더욱 부패함을 보았다”.
둘 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심은 아무도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즉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의미를 내포할 것 입니다.
에스겔서에서 반복되는 죄의 지적 중 하나가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것이며(겔 20:12–13, 20:16, 22:8),
안식일은 단순한 휴식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 백성의 표징(출 31:13–17)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왕·남편·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서 안중에도 없었다는 의미일 것 입니다.
특히 에스겔 8장,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속에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마저 우상을 섬긴 지도자들의 가증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 성전 북문 근처에서 아세라 여신상 숭배
- 각 방 안에서 각종 우상에게 분향하는 장로들
-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장면
- 성전 안뜰에서 약 25명의 사람들이 태양을 향해 경배하는 모습
즉, 성전이라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하나님의 이름이 두신 곳에서조차 온갖 우상 숭배가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 일탈이 아니라, 하나님을 철저히 배신하고 잊은 이스라엘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예배”라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 이심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심은
예배라는 형식은 있으나 그들의 중심에, 그들의 기억 속에 하나님은 없었던 상태를 지적하고 계신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