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0

에스겔1장10절 : 하나님의 침묵?

 "그 얼굴들의 모양은 내 얼굴이 이러하니, 앞은 사람 얼굴이요, 오른쪽은 사자 얼굴이요, 왼쪽은 소 얼굴이요, 뒤는 독수리 얼굴이니"

                                              - 에스겔 1:10 -

이 구절은 에스겔이 2차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에스겔이 본 환상 중에 등장한 네 생물(네 그룹의 그룹 천사)의 얼굴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아직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인 여호야긴이 남유다 왕으로 있던 시기로, 유다에선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참고로, 여호아긴은 약 기원전 597년, 단 3개월 정도만 통치함

아래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말기에 활동한 선지자들입니다.

📍 북이스라엘

▶멸망 시기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

활동한 선지자들:

  1. 아모스 BC 760년경 사회 정의와 회개 촉구 (북이스라엘 중심)
  2. 호세아 BC 750~722년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배신, 영적 간음 비판
  3. 요나 BC 780~750년경 이방 도시 니느웨 회개 메시지 전달 (아시리아 배경)
  4. 이사야 BC 740~680년 주로 유다에서 활동했지만 북이스라엘의 멸망도 예언

📍 남유다

▶멸망 시기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

활동한 선지자들:

  1. 이사야 BC 740~680년 유다의 심판과 회복, 메시야 예언
  2. 예레미야 BC 627~586년 멸망 직전까지 유다의 회개 촉구, 바벨론 포로 경고
  3. 스바냐 BC 640~609년 요시아 왕 시대, 심판과 남은 자 강조
  4. 하박국 BC 609~598년경 바벨론을 통한 심판에 대한 신앙적 질문
  5. 에스겔 BC 593~571년 바벨론 포로지에서 활동, 성전 회복과 새 언약 강조
  6. 다니엘 BC 605년 이후 바벨론 포로 시절, 열방 속 신자의 정체성과 예언

요약하면,

  • 북이스라엘 (BC 722년 멸망) 아모스, 호세아, 요나
  • 남유다 (BC 586년 멸망)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스바냐, 하박국

익숙한 이 이름들은 구약성경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지서의 저자들이기도 하지요.

  • 예레미야애가 5:20 (개역개정)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며 오래도록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굶주림으로 자녀를 삶아먹고 여인들이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는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유다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짓는 예레미야의 울부짖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5:17

  • KJV (King James Version)

"For this our heart is faint; for these things our eyes are dim."

  • GNT (Good News Translation)

"We are sick at our very hearts and can hardly see through our tears."

sick at heart" 또는 "sick at our very heart"는

단순히 심장이 아프다는 말이 아니라, 깊은 슬픔, 절망, 도덕적 충격, 역겨움을 표현하는 관용구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5장 17절

가눌길 없는 처참한 심경과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고백은 당시의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 합니다

회복을 간구하지만, 마치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에 즉각적인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구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선지서들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말기에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일하고 계셨던 하나님의 개입을 증명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유다의 멸망 전 에스겔이 본 이 스랍들은 흔한 천군천사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 가장 최측근에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이 스랍들은 단순한 전달자나 수종자 역할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직접 보고, 끊임없이 찬양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이사야 6장에서 선지자 이사야 또한 성전에서 하나님을 뵙는 환상을 봅니다.

그 자리에서 여호와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찼고, 그 곁에는 스랍들이 여섯 날개를 가지고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외치고 있었습니다.

에스겔과 이사야는 이 흔치 않은 경험을 눈으로 봅니다. 이들이 본 스랍을 묘사하는 장면은 단지 기이한 형상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묘사라기 보다 오히려 스랍의 등장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고대 왕궁에서 임금의 최측근 환관이 직접 어떤 메시지를 전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닌 왕의 직접적 의지와 개입을 뜻하듯, 스랍의 출현은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직접적 개입을 보여주고 계시는 강력한 표지였을 것 입니다..

다시말해, 이사야와 에스겔이 본 스랍의 증언은 단지 초월적 환상이 아니라, 바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응답이자 개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당하는 고통을 제거해주지 않으셨기에 우리에겐 마치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간일순 있지만, 분명 이 여러 선지자들의 증언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일하시며 개입하고 계셨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할 것 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마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우리를 외면하신 것처럼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이사야와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증언은 우리에분명 이렇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계셨고, 가장 적극적으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라고 ᆢ

고통 가운데 느껴지는 침묵은 결코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관여와 준비의 시간임을 이들의 환상과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근본적 구원을 주시고 싶으셨던 하나님은 솔로몬의 영광, 곧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지은 성전, 곧 모래성을 허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 구원, 곧 반석 위에 세워진 새 집을 주시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언제나 한결같은 우리의 구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의미를 몰랐을까요?

모르는 게 아니라, 사람은 알아도 죄를 짓는 쪽을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입니다.

"반역", 하나님께선 저들이 반역하였다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약속의 의미에 대해 무지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은 거듭 사람의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을 허무셨습니다.

하나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포로기 이후 재건되어 로마시대까지 존재했던 예루살렘 성전이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의 멸망의 시기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하셨고 묵묵히 우리에게 주신 자신의 약속을 향해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외면되거나 침묵하신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자신의 존재보다 더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심장이 무너지는 것을 넘어,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듯한 시간이 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을 목도하며, 그 충격에 아득해져가는 정신줄을 사력을 다해 붙잡아야 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이미 구멍이 나 버려, 심장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데도, 여전히 숨은 이어져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은 멈춘 적이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영광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세상도 예상하지 못한 그 솔로몬의 영광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6:29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부와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의 영광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풀 하나보다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이나 유다의 경건한 신앙생활이 오늘의 우리보다 못하거나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영광, 솔로몬의 성전은 무너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새 성전,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단한 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에 신실하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 오늘도 하나님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계신 시간일 것 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의 약속에 무지하거나 오해한 시간일 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무지해 우왕좌왕 엉뚱한 짓만 하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무관심하신 적도 외면하신 적도 없으셨다고 ᆢ

  • 호세아 11:8 (개역개정)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 한번도 사랑하시지 않은 적이 없으셨다고 성경은 온통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시편 19편 1-6 : 자기 부인 VS 하나님 부인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마태복음 16:24 -          ...